100일 글쓰기
14. 함께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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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서 여실히 느껴지는 것을 꼽는다면 단연 집단의 부재일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 대개는 대여섯 살부터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나의 유년기를 생각해보면 난 그다지 단체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고, 완벽히 섞여 들어간 편도 아닌 듯하다. 시간을 거슬러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사회가 요구하는 어느 정도의 표준을 갖추기 위해 학교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활동들이 어렵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새 학기 친구 사귀기와 같이. 중학교 때까지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던 것 같다. 보통의 학생들 대부분이 이러한 노력을 수행하기도 하고.

 

부단한 노력 끝에 어쨌든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보통 사람이 되어 있기는 하다. 혹자는 고등학교 졸업은 가만히 학교만 다니면 하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서,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자율학습까지 끝내고 집에 오는 하루하루가 쉽지만은 않게 흘러갔다. 내가 속한 신분에 대한 어느정도의 책임감과 함께, 집단에 어긋나지 않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지난 20년간 이토록 집단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부딪기며 살아온 것일까. 나는 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13. 멋지게 인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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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글쓰기 수업에서 교수님이 책의 한 구절을 보여주시고 어떤 책인지 아냐고 질문을 하셨다. 난 당연히 몰랐고, 저게 뭐야했는데 무려 2명이나 안나 카레리나라고 답했다. 더 놀랐던 건 그 대답을 했던 2명이 모두 공대 학생들이었던 것. 나는 '와 공대인데 저것도 알아?'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제 오늘 다시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공대건 문과대건 유명 고전은 그냥 기본 소양인 것 같다. 공대라 해서 명작으로 꼽히는 책을 몰라야 할 이유도 없고, 반대로 문과대라해서 과학을 몰라도 되는 건 없고. 어쩌면 나는 ~니까 이런건 몰라도 돼라는 생각 속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수업만이 아니라 이번 학기에 듣는 교양 수업도 그렇다. 지금 듣고 있는 교양은 서양사의 이해인데, 수강 신청할 때만 해도 나름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신청했던 수업이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으니 완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이 수업에서도 교수님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시는데 다들 잘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좋은 자극을 받았다. 글쓰기 수업과 비슷한 맥락으로. 어쨌든 똑똑하고 멋진 사람들 사이에서 자괴감이 들 때도 많지만, 나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나는 여전히 뚝딱거리고,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는 좀 슬프다. 그래도 언젠간 나도 멋지게 인사할 수 있길 바라며.

 

 

학교에 핀 꽃

12. 특기는 규칙적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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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하고 싶어 하는 쪽에 가깝다고 하겠다. 사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주말에 1시 넘어서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2-3시쯤 취침, 10시 30분-11시 사이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프라인 개강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밤새서 팬픽 읽으면서 맞는 아침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렇게까지 읽을 팬픽도 없고 아침까지 못 자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특정 시간만 되면 눈이 감긴다. 확실히 삶을 윤택하게 하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낫다.

 

초등학생 때는 부러 방학을 맞아 괜히 숙제로 주어진 방학생활계획표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은 그렇게까지 24시간을 제대로 활용할만큼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숙제를 내준 걸까. 매 방학마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방학하면 계획 세우고, 실패하고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부터는 스터디플래너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이거, 저 때는 저거.처럼 시간마다 쪼개 놓지는 않았는데 항상 할 수 있는 양의 120을 적었다. 이유는 학습 의욕 고취였는데, 딱히 효과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 계획 세우고, 다 못하고, 좀 자괴감 가지다가, 자고 일어나면 다시 리셋되고의 반복. 지금은 내가 유동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으니 예전처럼 빡빡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래도 언제 어떤 활동을 하기 좋은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 가령 코딩은 밖이 시끄러울 때, 방에서 키보드 두들기면 나름 집중이 된다는 것. 화학 공부 같이 좀 집중이 필요하면 밤이나 주위가 조용할 때. 사실 1월에 구매한 모트모트 플래너가 3달째 몇 장을 못 넘기고 있다. 오늘부터 열심히 쓰기로 다짐합니다. 사실 지금 쓰는 게 벌써 질려서 디즈니 한정판 플래너를 새로 구입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규칙적인 생활에서 시작한 글인데, 어째 마무리는 새로운 플래너 구입으로 끝나는 것 같다.

11.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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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MBTI를 맹신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하긴 해봤는데, ISFJ가 나왔다. 내가 엠비티아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사람의 성격을 너무 단면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어떻게 사람을 16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이것을 즐기는 이유를 좀 생각해보았는데, 남이 해 주는 캐해석이 흥미로워서가 아닐까? 마치 혈액형처럼, 각 성격유형에 따른 설명을 읽어보며 '아 맞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하는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 있으니까.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한가지 성격 유형만 계속 나오는 경우도 있는 반면 나처럼 검사를 할 때마다 다른 성격유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 바뀌는 편인데, 고정인 건 I 정도이고 나머지 요소들은 때에 따라 변화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INFP가 나왔었는데, 속칭 말하기를 이 유형을 미친놈이라고들 한다. 근데 나는 이렇게 성격유형 뒤에 따라붙는 별명 같은 것이 싫었기 때문에 더 엠비티아이를 맹신하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미친놈이 아니다. 엠비티아이 4글자에 나를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바뀔 수 있는 사람이니까. 

10. 3년 동안 꾸준히 해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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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논사글 교수님이 했던 질문이다. 3년 동안 꾸준히 해 온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여쭈어보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의지를 갖고 이어왔던 활동은 블로그 기록밖에 없는 듯하다. 나의 기록병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시작되어 몇 번의 블로그 이전과 수정을 통해 지금의 블로그로 정착했다. 매일매일 기록하기처럼 부지런 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방치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이어오고 있다는 게 나름 내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이 필체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다 예전에 쓴 글을 보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 글도 아마 3년 뒤의 내가 보면 부끄러워질 수도 있겠다.

 

이 블로그를 사용한지도 벌써 4년이 지나간다. 초등학생~중학생 때 구독하던 블로거들은 항상 대학생이 되면 블로그 활동이 뜸해지거나, 광고 블로그로 바뀌어서 새 글 알림을 꺼두거나, 이웃을 끊고는 했었다. 나는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담아내는 이 소중한 공간을 잘 이어나가고 싶다. 앞으로도.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100일 글쓰기도 좀 잘 해보자고. 시작한 지 4달 째이지만 아직도 10번째인 글을 보고 반성하자.

9.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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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3 때 쓰던 파일을 뒤적거리다가 잃어버렸던 민증을 찾았다. 와. 영영 없어진 줄 알았는데 기말 시험지 사이에 껴있었다. 파일 정리하다가 고3 때 생각이 나서 오늘은 수능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학교 이과는 홍익여고나 이대부고로 나눠져서 시험장을 배정 받았다. 7:3의 비율로 나눠졌던 것 같은데, 나는 3에 들어서 이대부고로 가게 되었다. 우리 반에서 내가 기억하기로 5명 정도였다. 수능 전 날 친구랑 같이 이대부고에 갔었다. 시험장 위치를 보고, 다시 집으로 가서 담임 선생님이 주셨던 간식들도 좀 먹고 계속 영어 지문 공부했다. 지구과학 파이널 책도 마무리를 다 못했다. 한 80정도 밖에 공부하지 못했음.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새벽 1시인가 2시정도 쯤에 잤고 다음날 6시 좀 넘어서 일어나서 아빠가 태워다 준 시험장에 도착했다.

 

들어가는데 기자들이 사진 찍고.. 일성여고에서 나오신 할머님들께 응원도 받고 들어갔다. 들어가니까 사람은 몇 없었고 내 자리에 앉았는데, 이때부터 뭔가 좆된 것을 느꼈다. 창가쪽 맨 앞자리였는데; 심지어 바로 옆에 청소도구함도 있었다. 심지어 같은 고사장에서 수능 본 사람들이 내놓은 가방이 내 발끝에 닿을 정도였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 앉히며.. 들고 간 수특 화작문을 펼쳐서 읽었다. 긴장감이 감돌고 너무 조용했다. 그러고나서 국어를 봤고 책상이 좁아서 너무 답답했다. 국어 끝나고 아무 생각이 없었고.. 희지한테 받은 페레로로쉐 초콜릿을 하나씩 까서 먹었다. 수학 볼 때는 조금 오줌 마려웠는데; 걍 참았다. 점심시간 되서 혼자 자리에 앉아서 가져온 불낙죽을 먹었는데 정말 입맛이 뚝 떨어져서 얼마 먹지도 않고 닫았다. 점심시간에는 지구과학을 조금 보고 이명학 파이널 책 들고 가서 연계 예상 지문 읽었다. 영어 시간에는 앞에 있는 감독관 콧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허 시발.. 어째저째해서 영어도 무사히 보고. 시간이 5분정도 남았는데 이게 바로 연계의 참맛이군요를 속으로 외쳤다. 과탐은 생지를 봤는데 생명은 최저 과목이 아니어서 그냥.. 봤다. 역시 어렵더군요. 지구과학은 성적이 나름 나오던 과목이어서 2등급을 바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마지막장은 1개 빼고 거의 다 찍은 기억이 난다. 끝나고 핸드폰 돌려 받기까지 멍때리면서 시발이라는 욕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서 핸드폰을 받고 현조한테 지구과학 너무 어렵지 않았냐고 문자했다. 나와서는 성하를 만나서 같이 학교를 내려왔다. 그리고 이대부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너무 추웠고 지구과학에게 당한 배신감 때문에 허망하고 짜증났다. 만원버스 한 대를 보내고 겨우 버스 타서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이미 국어랑 영어는 답지가 떴었던 상황이라 2호선에서 메가스터디로 채점했다. 영어가 1등급 떠서 너무 기뻤다. 아현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도 뭔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집 와서 옷 갈아입고 누워서 사랑한다는 뜻이야를 들었다. 아이유 러브포엠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시발~ ㅠㅠ) 지구과학 가채점표를 못써서 그때부터 정병에 휩싸인채 한 3주 정도를 살았다. 지구과학 4등급 뜨는 악몽을 서너번은 꾼 것 같다. 수능 다음날에 이대랑 건대 떨어지고 존나 우울했다. 홍대 최저도 못 맞추면 바로 숙대행이라 너무 슬펐다.

 

수능 성적표 받기 전에 추정 등급컷으로 나는 지구과학 4등급이어서 이대로 홍대도 안녕하는가 싶었다. 다음날 성적표 받으러 학교에 갔다. 기적적으로 내 성적표에 찍힌 지구과학 3등급을 보고 드디어 나 홍대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최초합 발표날에 홍대에 썼던 두 장 모두 예비를 받았다. 너무 짜증났다. 대학 붙으면 핸드폰 바꾸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리도 맨날 불합격해서 그 다음날에 바로 아이폰 11로 바꿨다. 핸드폰 바꾸고 나와서 이디야로 들어가서 숙명여대 확인을 했는데 드디어 붙었다. 혹자는 추합 마지막으로 들어가는게 제일 좋은거라고 했다. 근데 수시 6장 중에 5장 불합하면 그 생각이 바뀐다. 그냥 아무데나 합격 한군데라도 붙어야 마음이 편하다. 홍대 교과는 적정이었는데도 예비 받고서 숙대도 예비 받을까봐 너무 불안했는데 최초합이어서 너무 기뻤다. 숙대에 예치금 넣고 추합을 기다렸다. 교과는 2차? 3차 추합에 붙었고 종합은 끝내 추합되지는 못했다. 홍대에 붙고 숙대에 넣어 두었던 예치금을 환불 받고 홍대에 최종 등록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게 분명 숙대만 되면 홍대라도 가고 싶었는데, 홍대 등록하고서는 한급간이라도 대학을 올리고 싶어졌다.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ㅋㅋ) 다음편에서 이어서 써야지.. 물론 지금은 그냥 찐홍익인이 되어가고 있음.